EF28-90 / 오토오토200
조선조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두산의 옛 이름이 가을두(加乙頭) 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강변의 명승지로 그 풍경이 뛰어나서 문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중국 사신들이 오면 빼놓지 않고 다녀갔을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이 병인년(1866년)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로 수 많은 신자들이 목이 잘리어 숨진 뒤 절두산(切頭山:머리가 잘림)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이렇듯 역사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한 절두산에 기념관을 세워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와 그시대를 살던 선조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유물과 자료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의 설계는 산의 모양을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공모하여 서울대 미대 교수인 이희태(李喜泰)씨의 설계가 채택되었다. 기념관은 순교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적인 토착성과 전통적인 고유미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두어 설계되었다. 궁궐의 기둥과 같은 화랑의 원주, 옛 초가집 지붕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린 추녀, 조상들이 쓰던 갓 모양을 하고 있는 성당의 천개, 이런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옛 정취와 포근한 정감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성당의 평면은 부채살형으로써 초점인 제단에서의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 건물 설계자체뿐 아니라 건물 주변 곳곳은 어느 하나라도 놓칠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